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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경우의 수’ 고려 각각의 전략 수립… 신속 유연하게 상황 대처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오직 ‘시나리오’를 세워 대비할 뿐이다.” 환율급변, 유가폭등, 환경규제, 글로벌 대기업의 몰락, 갑작스러운 인수합병(M&A) 기업의 등장….
지난해부터 세계 경제계에 ‘쓰나미’처럼 몰아닥치고 있는 온갖 변화에 대응해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는 ‘시나리오 경영’이 화두가 되고 있다. 》
○ SK ‘시나리오’ 활용 환차손 1000억원 줄여
국내 기업 가운데 시나리오 경영에 가장 열심인 곳은 SK그룹이다. SK그룹은 2007년 말부터 최태원 회장의 지시로 각 계열사에 시나리오 플래닝(Planning) 담당 임원을 두고 있다. 이는 SK의 핵심계열사인 SK에너지, SK텔레콤 등이 환율과 유가변동, 정부규제 등에 특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SK그룹의 계열사들은 최악부터 최상까지 4단계로 시나리오를 만들어 그에 맞는 대응책을 세워 놓은 상태다.
시나리오 경영에서는 SK그룹의 싱크탱크인 SK경영경제연구소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이 만든 주요 거시경제지표는 계열사들이 시나리오를 짜는 데 기초적인 자료가 된다. 한 예로 2007년 11월 SK경영경제연구소가 한 달 동안 세 번의 보고서를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SK에너지는 이를 토대로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본격화하기 직전 환(換)헤지를 함으로써 환차손을 1000억 원가량 줄이기도 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올해는 ‘생존’이 기본 목표인 만큼 그 이름을 ‘서바이벌(Survival) 플래닝’으로 바꿔 전략을 짜고 있다”며 “최근에는 최 회장의 제안에 따라 올 6개월간 운영해 온 서바이벌 플래닝의 적절성을 평가해 수정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LG전자도 올 3월 시나리오 경영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마치고 가동에 들어갔다. 82개 전 해외법인에 2, 3명의 인력을 배치한 별도의 ‘워룸(war room)’을 만들고 이를 한국 본사 워룸과 24시간 연결해 각종 경영 변수를 수집하고 있는 것. LG전자 관계자는 “본사 워룸은 남용 부회장의 집무실과 같은 층에 마련돼 있어 남 부회장이 하루에도 몇 번씩 직접 워룸에서 각종 현안을 보고 받는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최근 전 세계 사업장의 경영리스크를 통합 관리하는 ‘전사통합 리스크관리체계(Enterprise Risk Management·ERM)’의 운영에도 돌입했다. ERM은 환율, 원자재 가격 변동과 같은 단기 경영 변수에서부터 환경·법률규제 변화 등 중장기적 경영 변수까지 총괄 분석한다. LG전자 윤부현 상무는 “현재 팀별로 발생 가능한 리스크 사례를 수집·평가해 중요도별로 등급을 매긴 ‘리스크 프로파일’을 만든 상태”라며 “위기상황 발생 시 시나리오별로 구체화된 대응 방안에 따라 대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 현대車 파격 마케팅으로 美시장서 ‘대박’
현대차는 ‘∼하면 ∼한다’는 시나리오의 개념을 고객 상황에 접목한 마케팅으로 미국에서 ‘대박’을 내기도 했다. 현대차를 구입한 고객이 1년 내 실직하는 ‘위기’에 처할 경우 차를 반납 받고 차값을 돌려주는 파격 마케팅을 펼쳐 고객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것.
국내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많은 기업이 시나리오 경영을 도입해 효과를 보고 있다. 창립 이래 다채롭게 간판사업 분야를 바꿔오며 130년 이상 장수에 성공한 제너럴일렉트릭(GE)은 회사의 장기 성장전략 매뉴얼인 ‘그로스 플레이북(Growth Playbook)’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GE의 과거 실적 및 각종 경기변동 시나리오를 분석, 종합해 만드는 이 보고서에는 시나리오에 따라 어떤 사업 부문에 어느 정도의 예산을 투자해 어떤 경쟁력을 육성할 것인지가 상세히 적혀 있다.
시나리오 경영학의 대가인 필립 코틀러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경영자들은 눈앞의 현안 외에도 기업을 둘러싼 경제, 사회, 정치, 문화적 상황을 잘 파악해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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