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석학 2명이 말하는 '강한 중소기업 만들기'
맥팔랜드 박사가 말하는 '中企 성공비결'
"사업이 궤도에 오를 때… 더 크게 베팅하라"
세계적인 중소기업 경영 구루로 꼽히는 키스 맥팔랜드(McFarland·53) 박사와 인터뷰를 시작하려는데, 박사가 기자한테 먼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경영전문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가장 많이 실린 기업이 어딘지 아세요?"
의외의 질문에 어리둥절해하는데, 맥팔랜드 박사는 숨돌릴 틈도 없이 자문자답(自問自答)을 이어나갔다.
"놀라지 마세요. 바로 IBM입니다. 1922년 창간된 후 2007년까지 나온 HBR(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리포트 2000여건 중에 IBM에 대한 것만 무려 502건이나 되더군요. 또 IBM과 GE, 델컴퓨터, 월마트, 사우스웨스트항공, 이 다섯개 대기업에 대한 보고서가 1304건에 이릅니다. 물론 이들 기업이 훌륭하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장장 85년간 내로라하는 경영 전문가들이 만든 리포트의 절반 이상이 고작 5개 기업에 관한 것이라니, 특정 대기업에 대한 편중이 너무나 심하지 않습니까? 과연 중소기업 CEO들이 IBM 같은 대기업으로부터 현장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경영 전략을 배울 수가 있을까요?"
맥팔랜드 박사가 중소기업 경영 분석서 '브레이크스루 컴퍼니(The Breakthrough Company)'를 쓰게 된 계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브레이크스루 컴퍼니'는 목숨을 건 도약으로 온갖 난관을 돌파, 평범한 중소기업에서 업계 최강의 중견 기업으로 성장한 9개사를 찾아내 성장 비결의 공통분모를 끌어낸 책이다. 책 제목을 '브레이크스루 컴퍼니(돌파 기업)'라고 붙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맥팔랜드 박사는 중소기업 연구가 대기업보다 훨씬 현실적임을 강조했다. "IBM이나 GE의 CEO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다수 기업인들은 자신이 지금 다니는 회사가 꾸준히 발전하길 바라고, 회사와 함께 성장의 기쁨을 누리길 원합니다. 이들에겐 도약에 성공한 중견기업의 사례가 대기업 사례보다 더 피부에 와 닿을 것입니다."
그는 해답을 얻기 위해 5년간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한 7000개 기업의 자료를 수집하고 1500명의 기업 임원을 직접 만났다. 이 중 애드트랜(통신장비), 치코스파스(의류), 익스프레스퍼스널(인력파견), 패스널(산업재유통), 인튜이트(회계관리 소프트웨어), 페이첵스(급여 아웃소싱), 폴라리스(스노모빌·ATV), SAS인스티튜트(기업용 소프트웨어), 스타우바흐컴퍼니(부동산 중개) 등 9개의 브레이크스루 기업을 찾아냈다.
맥팔랜드 박사는 "도약에 성공한 기업들은 월스트리트가 주목하는 유망 산업이 아닌데도 자기 나름대로 시장을 '재정의(再定義)'해 남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찾아낸 브레이크스루 기업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퍼다인 대학은 MBA스쿨을 갓 졸업하고 대학 입학처에서 일하던 26세의 청년을 경영대학원 학장으로 전격 선임했다. 경영대학원 교수들은 "박사 학위도 없는 20대 애송이가 어떻게 학장을 맡느냐"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대학 경영진은 "그가 입학업무절차를 크게 개선하는 등 학교 경영에서 두각을 나타냈기에, 경영대학원을 운영하는 데 적임자"라고 밀어붙였다. 이렇게 해서 키스 맥팔랜드는 미국 비즈니스스쿨 역사상 최연소 학장이 됐다.
이때부터 그는 대학 강의와 기업 컨설팅에 나섰다. 학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나려고 인근 클레어몬트 대학에 등록,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 교수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6년 후엔 위기에 빠진 중소기업들의 요청을 받고 CEO로 변신, 콜렉테크시스템스와 니보인터내셔널 등 2개 회사를 차례로 살려냈다. 경영 이론과 실무를 두루 경험한 그는 2001년 '맥팔랜드 전략 파트너'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기업 컨설턴트의 길로 나섰다.
지난달 26일 한국무역협회가 주관한 '2009 기업가정신 주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맥팔랜드 박사를 Weekly BIZ가 만났다. 반백의 머리에, 수염까지 길러 실제 나이(53세)보다 더 들어 보였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이를 가늠키 힘들 정도로 카랑카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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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스 맥팔랜드 박사는 1980년대 초반 서울에 처음 와 봤다. 그는“한국이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룬 비결은 강한 기업가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저서 '브레이크스루 컴퍼니' 첫머리에,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을 암벽 등반에 비유했다. 기업가들이 모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얘긴가?
"내가 사는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주변에 높이 1000피트 정도의 암벽이 있다. 꼭대기로 올라가려면 몸을 날려 조금 멀리 있는 홀드를 손으로 잡아야 한다. 성공하면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못 잡으면 큰 사고가 난다. 기업 성장도 똑같다. 성공한 사업가들은 모두 위험 감수자(risk taker)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위험을 감내하는 기업가가 드물다. 최고경영자 5000명의 심리 프로필을 분석했더니, 대부분 위험을 회피하는 사람들이었다. 소기업 CEO들 중엔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나면 더 이상 모험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이때가 기업 성장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해야 하는 시기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사가 기회를 빼앗아간다."
―박사님은 위험을 무릅쓴 투자를 베팅에 비유했다.
"베팅할 때엔 정확한 타이밍이 중요하다. 재무관리 소프트웨어 업계 1위인 인튜이트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창업자 스콧 쿡은 1986년 제품을 개발했으나 이를 판매할 방법이 없었다. 소프트웨어 유통업체들이 소비자들의 요구가 없으면 신제품을 매장에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쿡은 궁리 끝에 전재산 10만달러를 투자, 10여개 컴퓨터 잡지에 '49.95달러로 귀찮은 재무 관리는 이제 그만'이란 전면 광고를 내고 직접 통신 판매에 나섰다. 까딱 잘못했다간 회사가 파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과감하게 베팅을 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예상보다 3배 넘는 매출을 올렸고, 재무관리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1위에 올랐다. 포커게임에서 베팅이 커지면 손실과 이익이 모두 커진다. 이때 큰 이익을 내려면 쿡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베팅해야 한다."
―그건 마치 기업가들에게 도박하듯 '올인'하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기업들은 큰 위험을 감수했다. 1970년대 미국에는 100개가 넘는 스노모빌(앞바퀴 대신 스키를 단 눈 자동차) 회사가 있었다. 7년간 눈이 오질 않자 대부분 파산하고 4개 회사만 남았다. 그중 4위가 미네소타주에 있는 '폴라리스'였다. 폴라리스는 16명밖에 남지 않은 직원들이 단합해 업계 1위가 됐고, 당시 사장은 스노모빌업계 1위가 된 데 만족했다. 그때 기술임원 척 백스터가 "지금이야말로 신제품을 개발할 때"라며 ATV(all terrain vehicle·산길 등 좁고 심한 비포장 도로를 갈 수 있는 소형 자동차)에 도전하자고 제안했다. 주변에선 혼다·야마하 같은 일본 업체들이 석권한 시장에서 별로 승산이 없을 것이라며 비관적이었다. 하지만 폴라리스는 1985년 ATV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본 업체들이 선점한 3륜·수동변속 ATV 대신, 4륜·자동변속 ATV를 내놓고 새 시장을 개척했다. 지금 폴라리스는 북미 ATV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1위 업체다."
―경제위기로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불황 같은 외부요인은 기업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나?
"도약에 성공한 회사를 찾아가 비결을 물어보면 한결같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는지 아느냐? 그런데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회사가 성장했다'고 말한다. 힘든 시기가 기업엔 오히려 핵심역량(vital capability)을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기업이 커지면 의사결정 과정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조직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갓 창업한 기업은 사장 혼자 모든 걸 결정한다. '원 맨 밴드(one-man band)' 단계다. 회사가 조금 커지면 CEO 혼자 모든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자신과 생각이 똑같은 사람들을 참모로 둔다. '부족(部族)'을 이루는 것이다. CEO는 어떤 상황에서든 참모들이 자신과 똑같은 결정을 할 것으로 믿는다. 기업이 성장해 나가면서, 조직도 변한다. 기획·재무·영업 등 CEO가 지식이 모자라는 분야에서 전문가를 필요로 하게 된다. 분야별 담당임원을 두는 것이다. 나는 이를 '마을 원로' 단계라고 부른다. 이 단계의 문제점은 기업 전체 이익을 도외시하고 부서별로 따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해 언제나 기업 전체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의사 결정을 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 때문에 살아남기 힘들다는 중소기업인들의 호소를 종종 듣는다.
"내 생각은 다르다. 중소기업의 강점은 대기업보다 작아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소니 같은 대기업은 중소기업처럼 빨리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틈새시장이 생기고, 대기업에는 너무 작지만 중소기업에는 충분한 기회가 생긴다. 만약 중소기업이 '재벌은 너무 강해서 우리는 희망이 없다'고 자꾸 생각한다면 정말 상황이 그렇게 된다. 한국 중소기업들에 '성장하려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중소기업 CEO들을 만나면 인재를 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신입사원을 채용해 일을 가르쳐 놓으면 떠나버린다는 말도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 SAS의 창업자 짐 굿나잇은 업무 강도가 심하기로 유명한 GE를 보고 자신은 직원들이 다니고 싶은 직장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직원들에게 개인용 사무실을 제공하고, 회사에 의료·육아시설은 물론 미용실까지 설치했다.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 창업할 수도 있지만, 회사 안에서 일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경영자들은 회사를 즐겁고 흥미로운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을 비롯, 아시아에서는 기업 오너들이 2세, 3세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경향이 강하다.
"아시아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서도 가족이나 자녀에게 회사 경영권을 넘기는 기업인도 있고, 2·3세 경영인이 물려받아 회사를 잘 키운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회사 규모가 클수록 2·3세 상속은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면, 창업자인 부모가 갖고 있던 가치나 정직성, 땀의 결실부터 잘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래 기업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한다면.
"대기업이라는, 밖으로 드러난 브랜드에 너무 현혹되지 말고 연봉에도 너무 집착하지 말라. 5년에서 10년 정도는 뭔가 배울 수 있는 회사를 택하라. 부서마다 업무가 미리 나뉜 대기업보다 여러 가지 일을 두루 해야 하는 중소기업에서 오히려 배울 게 더 많다."
2009.11.1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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