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계의 화두는 ‘위기론’이다. 초일류기업으로 품질 하나만큼은 의문을 품지 않던 도요타의 신화는 대규모 리콜 사태로 인해 신뢰도가 급전직하하고 있다. 도요타 사태는 현재 아무리 최고의 기술력이 있는 글로벌 기업이라도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 준 사례다. 한편 그동안 정보통신(IT) 업계에서 한물 갔다고 여겨진 애플사는 아이팟과 아이폰이 연달아 성공하면서 아이패드까지 내놓으며 최고의 IT기업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_ 폴크스바겐 본사, 애플과 스티브잡스, 노바티스사의 글리벡, 구글 본사. |
삼성경제연 ‘글로벌 승자기업 7선’
국내에서도 도요타 사태를 계기로 이러한 위기론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다시 경영의 전면에 등장한 명분도 위기론이다. 이 회장은 복귀 일성으로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지난 5월 11일 5대 신수종 사업을 발표하면서 23조원을 쏟아붓겠다고 선언했다.
LG도 20조원을 신성장산업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했고, 현대기아차·포스코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새로운 신성장 동력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재벌 기업들이 향후 신성장 동력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선언은 도요타 사태 같은 일이 국내 업체에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한 조건은 투자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은 투자는 기본이고 시장 다변화, 브랜드 관리, 내부체계 혁신을 통해 위기가 왔을 때 이를 극복하는 노하우가 있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글로벌 승자기업 7선’이라는 자료를 발표했다.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 슬기롭게 악재를 이긴 기업의 구체적인 사례다. 보고서에 따르면 극심한 불황에도 업종의 부침에 따라 기업의 명암이 엇갈리기도 했지만 불황과 상관없이 탁월한 업적을 낸 기업이 존재했다.
세계 1위의 맥주 회사인 안호이저부시 인베브는 제품과 시장의 다각화와 브랜드 관리를 통해 시장의 우월적 지배력을 강화했다. 2008년 벨기에 맥주 회사인 인베브가 미국의 맥주 회사인 안호이저부시를 인수하면서 탄생한 이 회사는 불황 이전부터 준비해 온 ‘맥주→무알코올’ ‘구미시장→신흥시장’으로의 다각화 노력이 주효했다. 생수·탄산음료·과일주스 등 무알코올 음료시장의 비중을 늘려 맥주 시장의 수요 포화에 대응했고, 불황 이전에 브라질·중국 등 신흥시장에 대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 충격을 최소화했다.
맥주의 경우 글로벌 지역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관리, 육성해 고객의 충성도를 높여 왔다. 이 회사는 세계 10대 맥주 브랜드 가운데 4개를 소유하고 있으며, 10억달러 이상 매출을 기록한 브랜드가 13개가 있을 정도로 막강한 브랜드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비핵심사업 부문을 과감히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함으로써 핵심사업 부문에 집중 투자한 것도 위기를 기회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비핵심 부문 매각 유동성 확보 성공
폴크스바겐은 가격대별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불황 충격을 이겨낸 기업이다.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6% 이상 감소한 가운데 오히려 1.1% 증가해 도요타에 이어 업계 2위에 등극했다.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629만대를 판매해 1위인 도요타(781만대)에 근접해 가고 있다.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CEO)인 마르틴 빈터코른은 “2018년까지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목표로 정했다.
폴크스바겐의 전략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9개 브랜드를 운영하면서도 각 브랜드의 가격과 주력시장을 달리해 내부 출혈경쟁을 사전에 방지했다는 것이다. 각 브랜드는 소형차에서 고급차·상용차에 이르는 다양한 타깃을 설정하고 있으며, 다양한 국적(7개국)의 브랜드를 인수해 주력시장에 차별성을 뒀다. 이번 글로벌 경제 위기에도 소형차인 폴크스바겐 승용차 판매가 증가(7.8%)하면서 아우디(-5.4%), 벤틀리(-28.0%) 등 고급차 판매 감소를 만회했다. 또한 글로벌 자동차 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신흥시장인 중국(1985년 진출), 브라질(1953년 진출)에 현지 생산 및 판매를 시작해 선발자의 이점도 향유하고 있다. 데틀레프 비티히 폴크스바겐 부사장은 “중국이나 브라질에서는 우리를 자국 메이커로 여긴다”고 말할 정도로 폴크스바겐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노바티스는 블록버스터급 전문 의약품의 기여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노바티스는 2004년 이후 연평균 10%씩 매출이 증가해 지난해에는 존슨&존슨, 화이자, 로슈에 이어 세계 4위의 제약 회사로 급성장했다. 노바티스의 전문 의약품은 연간 1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노바티스 매출의 65%, 영업이익의 74%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고혈압치료제 ‘디오반’,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등 10대 전문 의약품이 전체 매출의 43%를 차지할 정도로 소수 의약품이 전체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
노바티스는 벤처 투자와 끊임없는 M&A를 통한 신약 기술 확보를 통해 회사의 경쟁력을 관리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각국 정부가 의료보험비 지출 감소를 위해 제네릭의약품(특허기간 만료에 따른 복제 의약품) 시장을 활성화하는데 발 맞추어 관련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애플은 혁신적인 제품군을 활용해 불황을 정면으로 돌파한 기업이다. 애플은 2000년대 들어 아이팟·아이폰 등을 출시하며 컴퓨터 제조에서 휴대용 멀티미디어기기·휴대전화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애플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2% 성장했으며, 브랜드 가치도 154억4000만달러로 구글(25%), 아마존(22%)에 이어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애플은 지속적인 연구개발(R&D)로 아이폰과 같은 혁신적인 제품 개발과 아이패드 같은 새로운 유형의 멀티미디어 기기를 선점함으로써 시대를 이끌어가는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애플은 제품 관련 생태계를 구축해 가치를 제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팟을 출시한 2001년부터 훙하이·아수스텍·인벤텍 등 제조 전문 기업에 제조를 위탁하고, 애플은 제품 개발과 설계·마케팅에 집중함으로써 효율을 극대화했다.
생산부터 판매까지 수직계열화 구축
세계 타이어 업계 1위인 브리지스톤은 수직적 통합 체제 구축으로 원가경쟁력을 제고해 불황의 파고를 넘은 글로벌 기업이다. 브리지스톤은 자동차 산업의 침체 여파로 지난해 상반기의 영업손실이 2억1600만달러에 달해 1961년 상장 이후 최초로 적자를 기록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미국 시장에서 원재료 생산에서 타이어 제조 및 소매점 판매까지 수직적 통합 체제를 구축하고, 일본시장에서 재생타이어를 핵심 사업으로 정의하고 불황형 신사업을 선제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지난해 하반기에 미국 시장에서의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0배 이상 증가하고 일본 시장에서도 선전해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
세계 최대 포털 업체인 구글은 주 수입원인 온라인 광고시장이 불황의 충격을 덜 받은 덕분에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갔지만 핵심 역량인 검색엔진과 온라인 광고기술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경쟁 기업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또한 구글의 경우 온라인 광고시장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의 일부를 활용해 클라우딩 컴퓨팅 시장(인터넷 기반의 컴퓨터 시장)에 투자하는 등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트레이딩 업계 5위로 급부상한 홍콩의 노블그룹은 가격 등락이 심한 원자재 품목을 취급하면서 이른바 ‘파이프라인’ 전략을 통해 수익을 안정화하고 있다. 파이프라인 전략은 원료 생산부터 구매, 물류, 가공, 판매까지 수직계열화를 구축해 단계마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스템이다. 또한 위기를 계량화해 상시관리하는 철저한 위기관리 시스템도 노블그룹이 경제 위기의 충격 속에서도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는 요인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
2010-05-2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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