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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비경제와 좀비의 상관관계

자하연 2014. 4. 11. 00:22

내부적 폭력ㅡ공동체 내부에 있는 모든 이의제기와 경쟁, 시기심, 그리고 언쟁을 억누르기 위하여 제물을 쓰는 것이다. 제물의 목적은 그 사회의 조화를 회복하고 사회조직을 강화하는데 있다.

 

                                                                                                      ㅡ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중에서

 

 

희생양이란, 특히 정치적 희생양이란 어떤 국가나 사회가 위험에 직면했거나, 극도의 혼란 상태로 빠져들어 내부적 결속을 높여야 할 때 동원된다. 성경에서 처음 나온 희생양(아브라함의 제물)은 일종의 형제 살인에 준한다. 희생양이 당연히 죽여도 되는 철저한 이방인이라면 그것은 뜻하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다음 이미지 캡처

 

희생양은 너와 나와 별로 다르지 않는 자 중에서, 도저히 융화될 수 없는 이질적 성향을 지닌 자거나, 관습이나 전통에 벗어난 행태를 하는 자일 때 원래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다. 다만 희생양 연구의 대가인 르네 지라르가 “희생양은 본래 보복당할 위험이 없는 폭력 행위”라고 정의한 것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보복당할 위험이 없는 존재를 희생양으로 정하면 그 영향력은 살인에 준할 뿐 그 이상의 효력을 갖기가 힘들다. 감수해야 할 위험이 없지만, 그것을 교묘하게 숨기거나 열광적 분위기에 휩쓸리도록 만들 때 희생양의 효력은 최대화된다. 형제 살인에 준하는 광기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모든 이견을 배척시킬 수 있는 비이성의 상태에 빠진다.

 

 

단일 민족이 중심이 되고, 같은 언어와 기억, 신화와 전설(대부분 정치사회적 이유로 만들어진 것들이지만)을 공유하는 특정 영토의 국민국가 정부가 애국심을 강조할 때 정치적 희생양은 최고의 위력을 발휘했다. 근대 이성의 산물인 정체성과 안정적인 체제로서의 민족정신과 국민국가란 타국과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 이익을 주장할 때만 존재가치가 인정받는다.

 

                                             애국심이라는 이름의 폭력ㅡ다음 이미지 캡처 

 

헌데 정체성과 애국심을 고양시키기 위한 ‘감수해야 할 위험이 없는 희생양’은 글로벌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액체 근대’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오히려 처참하게 살해된 희생양이 무덤이나 버려진 곳에서 일어나 좀비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훨씬 더 효력을 발휘한다. 영원한 적이 있다는 생각이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경계선에서 폭발적인 공포를 야기한다.

 

 

좀비 영화의 특징을 생각해 보라!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서 출몰하는 좀비를. 그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로든 찾아온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끝없는 방어막을 치는 살아남은 자의 두려움은 격리와 배제의 제품들로 삼중 사중의 보호 장치를 구축한다. 사회와 국가는 어디에나 있는 좀비를 막을 수 없기에 개인은 스스로의 안전을 강구해야 한다.

 

 

이렇게 죽음에 대한 공포는 개인화됐기에 그것이 무엇이든 내 생명을 연장시켜줄 수 있는 제품들과 식료품들이 필요하다. 요새 같은 나만의 안식처도 필요하다. 어디에나 있는 공포는 유동하는 공포여서 언제나 피할 수 없는 숙명적 결론으로 마무리되기 일쑤다. 마무리되는 좀비 영화란 없고, 마지막 장면을 채우는 것은 홀로 남은 개인의 공포뿐이다.

 

                                                  타임스퀘어 광장ㅡ다음 이미지 캡처 

 

이것이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로 연결되며 다음과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소비경제의 성패는 소비자 창출에 달려 있고, 공포를 없애줄 상품에 갈급한, 공포에 빠진 소비자 창출에 달려 있다. 자신들이 느끼는 공포가 퇴치될 수 있는 것이기를, 자신들도 그런 공포 퇴치가 가능하기를 바라는 소비자들” 말이다.

 

 

이에 가장 합당한 경구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이다. 현대 사회에서 공포란 단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니, 피하려 하지만 말고 즐길 수 있을 거리와 돈이 있으면 뒤로 미루지 말라는 강력한 신호로 전달된다. 당장 내일을, 아닌 한 시간 후도 알 수 없는데 미래의 만족을 위해서 오늘의 희생을 감내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나와 똑같은 사람(가족, 이웃, 동료, 모두 다)이었지만, 그들은 내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돌변할 수 있으니 그들을 배려하거나 신경 쓰지 말고, 오직 당신의 욕망과 지금의 쾌락에 집중하라! 저축하느니 소비하라. 건강과 혼동되기 일쑤인 균형 잡힌 몸매의 매력적인 소유자가 되라! 외모가 모든 것을 결정하니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마라!

 

 

소비하라, 소비하라.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이 미래의 좀비다. 그리고 상품들에도 유효기간이 있어서 지금 아니면 당신은 아무 것도 누릴 수 없다. 이것이 소비하는 사회의 유동하는 공포가 만들어낸 좀비의 본질이다. 내가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공포에서 시작된 것이 소비의 경쟁에서 뒤질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출처 : 늙은 도령의 세상 보기
글쓴이 : 늙은도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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