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경영·전략

차세대 동력 찾는다고요? 대중에게 길을 물어보세요

자하연 2011. 2. 14. 15:48

CEO들에게 물었다. 기업을 이끌어 가는 데 있어 가장 큰 고민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꼽은 세 가지. 우선 차세대 성장동력을 어떻게 찾을까, 다음이 기업의 핵심인재를 어떻게 찾고 키울까, 마지막은 지금의 제품과 서비스 품질을 어떻게 향상시킬까.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 뛰어나고 경험 많은 기업 수장들도 잠 못 이루게 만드는 고민들이다. 경쟁사들이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고 있을 때, 대중들에게 속내를 풀어놔 해답을 찾은 기업들이 있다. 대중들과 백지장도 맞들어 승승장구하는 기업들, 어떻게 한 것일까?


 

 기업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때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 안갯속 같은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대중에게 길을 물으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사진은 남극의 관문인 칠레 킹 조지섬의 ‘이정표 탑’. 세계 주요 도시의 이름·방향·거리 등이 표시돼 있다. / AP연합

사례1. 시스코
거액 걸고 아이디어 대회… 차세대 신사업으로 채택

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 작년 매출만 해도 361억달러. 이런 세계 1위 기업도 신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아이-프라이즈(I-Prize)'라는 아이디어 경진대회.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하면 좋을지 일반 대중에게 묻고, 그 중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선정한다. 처음 대회를 시작한 2007년에는 104개국의 2500명이 참가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 중에 스마트 그리드 관련 사업 아이디어가 25만달러의 상금을 거머쥐며 우승을 차지했다.

2007년 쏠쏠한 재미를 본 시스코는 2010년 1월 제2회 대회를 열었다. 156개국 3000여명의 참가자가 824개의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장장 6개월의 경쟁이 끝나고 선정된 우승자는 5명의 멕시코대학생으로 이뤄진 팀.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과의 연결성을 높이는 이들의 사업 아이디어는 시스코의 차세대 신사업으로 선정됐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아이디어 경진대회를 연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시스코는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수천 명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실명을 밝히면 누구나 아이디어를 올릴 수 있다. 게다가 다른 아이디어에 코멘트를 달 수 있게 하고, 투표도 한다.

시스코는 향후 발생할지 모를 지적재산권 문제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비했다. 예를 들면 아이디어를 올릴 때 정말 자신의 의견이 맞는지 묻는 서약 절차를 마련했다. 무단 도용으로 인한 잡음을 애초에 없앤 것.

그렇게 해서 모인 800여 개의 아이디어. 이제 옥석을 가릴 시간이다. 시스코는 내부적으로 아이디어 평가 기준을 세웠다. 회사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한 아이디어인지, 충분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지, 시의적절한지, 시스코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지,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우위를 유지할 수가 있는지 등 5개 기준이 그것.

이 기준을 통과하여 준준결승까지 오른 아이디어가 40개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디어를 키운다. 선정된 아이디어들이 잘 가다듬어질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약점은 보완하고, 강점은 살릴 수 있도록 각 팀에 멘토를 붙여줬다. 또한 아이디어가 사업적 가치가 있는지 참가자 스스로 평가할 수 있도록 시스코 내부에서 쓰는 사업 계획 평가방법을 공유했다. 이렇게 해서 준결승에 10개의 아이디어가 올랐고, 시스코 임원과 외부전문가의 평가에 의해 우승자를 결정했다.

사례2. 탑코더
전세계 해커들 승부욕 자극… 제 발로 찾아와 일하게 해

'뭐야? 학벌 좋고, 경력 좋아 뽑아놨더니 실력이 저 정도밖에 안 돼? 자격증은 어떻게 딴 거야?'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을 준비던 잭 휴즈(Jack Hughes)는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프로그래머를 뽑는 일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학벌·경력·자격증. 이런 간판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실력을 보장해 주지 않았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제일 잘하는 친구들은 누가 있을까?' 그러다 문득 휴즈는 업계의 최고 골칫거리인 해커(hacker)들을 떠올렸다. 종종 문제를 일으키긴 하지만, 이들만큼 뛰어난 실력자들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을 어디서 찾아내느냐는 것이다. 해킹의 특성상 어둠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들을 끌어낼까? 해커들을 움직일 자극제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과시욕'. 해커들이 아무 대가 없이 해킹을 하고 오픈 소스를 개발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다른 프로그래머들보다 자신이 뛰어남을 보이고 싶은데, 그 경로가 해킹과 같이 음성적으로 흐르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

휴즈는 이들의 과시욕을 양성적으로 표출할 장을 마련했다. 먼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 '탑코더(topcoder)'를 만들었다. 기존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회원 간의 친목을 도모했다면, 탑코더는 전 세계 모든 프로그래머들을 대상으로 알고리즘 문제풀이 대회를 개최해 회원 간의 경쟁을 유도했다. 결과를 순위로 보여주며 우승자에게는 상금을 준다. 자신을 과시할 기회와 상금,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전 세계 프로그래머들이 탑코더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중을 상대로 장을 마련해 줬을 뿐인데, 현재 전 세계 200여 개국, 26만명이 회원이다. 이 중에는 대회 상금으로만 연간 30만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프로그래머들도 있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상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자동적으로 탑코더는 전 세계 최고 실력자들의 신상정보를 손에 넣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우승자들의 프로필을 보면 의외로 대만·인도·필리핀·폴란드 출신에 나이는 20대 초반 학생들인 경우가 많았다. 학력이나 경력으로 선발했다면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숨은 진주들이다. 이런 숨은 진주들을 유치하기 위해 썬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구글(Google)·인텔(Intel)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탑코더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탑코더는 이들 기업을 후원자 삼아 그 기업을 위한 프로그램 콘테스트를 열기도 한다. 기업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을 의뢰하면 탑코더는 이를 프로그램 디자인·구성 등 분야별로 쪼개서 콘테스트에 올린다. 한번 콘테스트가 열리면 전 세계에서 5000명이 넘는 프로그래머가 참가한다.

사례3. 허핑턴 포스트
3000명의 파워 블로거 활용… 강력한 '1인 미디어' 창조

2005년 무명작가였던 애니아나 허핑턴이 자신의 블로그에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는 글 하나를 올린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허핑턴의 블로그는 지금 '허핑턴 포스트'(Huffington Post)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로 자리 잡았다. 2010년 6월 한 달에만 2430만 명의 접속자를 기록, 뉴스 사이트 순위에 가뿐히 20위에 올랐다. 워싱턴포스트·월스트리트저널·AP보다 높은 순위다.

어떻게 개인 블로그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우선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슈를 다뤘다. 동시에 스포츠·연예·경제 등 '국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들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장'을 마련했다. 블로그 기반이지만, 뉴스 사이트와 동일하게 기자를 고용하고 취재하고 편집을 한다.

기자는 '1인 미디어'라고 불리는 파워 블로거 집단을 활용했다. 상근 직원은 50여명에 불과하지만, 3000여명 이상의 블로거 기자가 비즈니스·스포츠·엔터테인먼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의 글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뉴스위크 등 기존의 신문매체에 있던 기자들이 허핑턴 포스트로 옮겨와 글을 쓰기도 한다.

허핑턴 포스트는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주목했다. 2009년 8월 '허핑턴 포스트 소셜뉴스'라는 페이스북 연결 서비스를 시작했다. 허핑턴 포스트의 독자는 자신이 본 뉴스를 손쉽게 페이스북으로 옮길 수 있게 됐다. 옮겨진 기사 링크는 해당 페이스북을 방문한 지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친구가 추천한 기사나 글을 신뢰한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허핑턴 포스트를 다시 방문한다.

허핑턴 포스트는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2009년 1월 미 정부의 경기부양책 관련 예산안 1400페이지를 통째로 사이트에 올렸다. 그리고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찾아달라고 독자들에게 요청했다. 367명의 독자들이 이에 응답했다. 물론 상당한 의견이 기사에 반영됐다. 오바마 행정부를 당혹하게 한 것도 여러 건.

기업들이여, 안갯속 같은 불투명한 상황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대중을 끌어들여라. 생각지도 못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이다.

기업이 대중에게 길을 물을 때 명심할 3가지

1.원석을 보석으로 만든다는 마음가짐이 먼저다

대중에게 쉽게 답을 찾으려는 마음을 버려라. 대중에게서 원석을 찾고 이를 같이 세공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대중의 지혜를 폄하하게 되거나 지쳐 떨어지고 만다.

2. 공정함은 기본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취합해 가는 과정 속에서, 절차와 평가의 공정함을 잃어버린다면 대중이 기업에 등을 돌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3. 보상을 잊지 마라

물질적인 보상을 넘어선 보상을 말한다. 자발적 참여자에게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과 성과를 보는 것 역시 보상이다. 자신의 의견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반응을 보여줘야 한다.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