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
이상문 美 네브래스카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기업의 '이노베이션 3.0'
아이폰처럼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은가?
"기업들은 왜 모든 문제를 다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지요? 그런 방법으로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나요? 이젠 이노베이션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이상문 미국 네브래스카대 석좌교수는 지난달 29일 서울대 SK경영관에서 가진 한국경영과학회(회장 박진우 서울대 교수) 초청 강연에서 "앞으로의 이노베이션(innovation)은 외부의 한두 개 업체에 제한적으로 업무를 맡겼던 과거와는 달리 문제 해결을 위해 외부의 누구에게든 문호를 개방하는 '이노베이션 3.0' 방식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에 생산을 위탁했던 정도의 한정된 수준에서 벗어나, 신제품 기획이나 회사 전략 수립 같은 중요 업무에도 외부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면적 개방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 개방 대상 역시 몇몇 기업과 교류하는 데 그치지 말고, 개인 전문가나 소비자와도 손을 잡는 등 크게 넓혀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이노베이션이란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혁신적 신상품을 내놓는 것이나 사업 모델 혁신을 뜻한다. 따라서 그가 주장하는 '이노베이션 3.0'이란 이렇게 기업이 신사업을 구상·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면적 개방 마인드로 외부와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최근 경영계에서 거론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개방형 혁신)'이나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대중의 지혜를 빌려 일을 처리하는 것)'도 '이노베이션 3.0'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반면 과거 기업들이 내부 자원만을 활용하는 폐쇄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던 것을 '이노베이션 1.0'이라고 불렀다. 또 이후 생산 등 일부 분야에서 시작된 기업들의 아웃소싱이나 제휴 트렌드를 '이노베이션 2.0'이라고 명명했다.
서울대를 거쳐 미국 조지아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미국에서 41년간 교수로 활동하며 기업 의사 결정과 생산 관리 분야의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현재로도 미국 갤럽사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이제는 한 차원 다른 이노베이션 시대"
이 교수는 새로운 이노베이션이 필요한 이유부터 설명했다.
"무엇보다 경제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세계 시장은 하나로 통합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산업 간 융합 속도는 어떤가요. 중국 같은 새로운 경제 대국이나 신생 기업의 성장 속도도 무섭습니다. 소비자 트렌드 변화는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입니다. 과거의 이노베이션 패러다임으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다행스러운 건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글로벌 경제 체제로 인해 역량 있는 외부 자원을 찾기가 훨씬 수월해졌다는 겁니다."
그의 이노베이션 3단계론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물론 과거에는 이럴 필요가 적었습니다. 가령 '이노베이션 1.0'시대에는 모든 것을 기업체 내에서 처리했죠. 제품을 고안하고, 원재료를 사서 제품을 만든 뒤 마케팅하는 일련의 과정을 기업이 다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기업들은 그저 똑똑한 인재만 뽑으면 됐습니다.
그다음 '이노베이션 2.0' 시대엔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아마 아웃소싱을 떠올리시면 될 것 같은데, 생산 등 특정 부문 문제 해결을 위해 외부 업체를 활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시대 기업들은 외부의 전문 조직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은 한정돼 있었고, 상품 기획이나 기업 전략 같은 중요 분야는 외부 자원 활용 대상에서 제외됐었습니다."
이 교수는 다시 '이노베이션 3.0'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러나 이젠 다릅니다.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혼자서 다 하는 식의 이노베이션으로는 시장 흐름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외부의 다양한 기업, 전문가, 혹은 개인의 생각을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융합시키는지 여부에 따라 이노베이션 성공 여부가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개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노베이션 3.0'의 힘은 강력하다"며 말을 이었다.
"알고 계신 대로 아이폰이 대표적 예입니다. 아이폰이 다른 스마트폰에 비해 기술적으로 더 뛰어난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외부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냈고, 덕분에 아이폰은 스마트폰뿐 아니라 다른 휴대폰까지 압도했습니다. 애플도 한때는 내부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곤 했지만, 그런 방식으론 더 이상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란 판단을 내린 거죠.
요즘엔 P&G 같은 소비재 업체는 물론, 과거 '이노베이션 1.0' 조직이었던 미 항공우주국(NASA)도 열린 마음으로 외부에서 제시하는 해결 방법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글로벌 기업들
그는 선진 글로벌 기업들이 이런 추세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기업들은 10년 전부터 이런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P&G의 경우 전체 제품의 52%를 외부 아이디어에서 얻고 있습니다. P&G는 9000명의 자체 연구개발 인력을 갖고 있지만, 150만 명이나 되는 외부인으로부터 아이디어와 자문을 구합니다. 연구 전문업체뿐 아니라 개인들로부터도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이는 사실 굉장히 효율적입니다. 기저귀를 예로 든다면, 기저귀를 사용하는 아기 엄마들보다 기저귀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국 통신회사 AT&T의 예도 들었다.
"AT&T는 외부 자원을 활용하는 대표적 기업입니다. 새 서비스 개발을 위해 아이디어를 공모하면 3만개씩 몰리기도 합니다. 세계 1위 휴대폰업체 노키아(Nokia)도 소비자들에게 휴대폰 디자인을 자주 공모하죠. 일라이 릴리(Eli Lilly)라는 제약회사의 경우 연구개발 과정에서 18만 명의 과학자 네트워크를 활용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외부에서 자문을 구하고 채택된 아이디어에 대해선 보상도 합니다."
'이노베이션 3.0'을 넓게 보면 외부에서 자원과 아이디어를 갖다 쓰는 것뿐 아니라, 자신들의 자원을 외부에 제공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IBM이 자신들의 특허 500개를 개방한 것이 대표적이다. 쓰지 않던 자원이 재활용되면서,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아마존(Amazon)이 자신들이 갖고 있는 컴퓨터 자원을 활용해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기업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같은 IT 자원을 이용자가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빌려 쓰고 이에 대한 사용요금을 내는 방식의 서비스)을 제공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는 '이노베이션 3.0'을 도와주는 업체들, 가령 외부 전문가들을 찾아주거나 연결해 주는 중개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그는 밝혔다.
"'이노베이션 3.0'은 사람의 속성과도 맞아떨어집니다. 사람은 본래 공명심 비슷한 걸 갖고 있거든요. 가령 어떤 대기업이 한 개인의 아이디어를 채택했다고 칩시다. 채택된 사람은 커다란 자부심을 느낍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세상에 제품으로 빛을 볼 수 있게 됐으니까 말이죠. '이노베이션 3.0'이 강력한 건 단순한 경제적 보상 외에 이렇게 외부 협력자들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교수는 "우리 기업들도 이런 부분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2000명 정도의 휴대폰 연구개발 인력을 갖고 있지만, 인력이 많다고 해서 시장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니까요."
■이노베이션 3.0에서 주의할 점
그는 '이노베이션 3.0' 적용 과정에서 주의할 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중요 정보에 대한 보안 문제와 맡은 일에 대한 책임 소재 문제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외부에 일을 맡기다 보면 아무래도 내부 직원들이 맡아서 할 때보다 책임감이 떨어질 수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외부에 일을 맡기더라도 책임감 있게 일이 처리되도록 잘 조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리스크를 잘 관리해 내는 것이야말로 '이노베이션 3.0' 시대에도 기업이 유지해야 할 핵심 역량입니다. 그래야만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연구·개발 분야를 대표적 예로 들었다.
"가령 신제품 개발 과정에 2만개의 외부 아이디어가 들어왔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그걸 다 채택할 건가요. 아무것이나 채택해 만들었다가 실패할 땐 어떡하나요.
결국 수많은 아이디어 가운데 경쟁력 있는 것을 골라내는 것은 여전히 기업 내 연구·개발 인력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연구·개발 부서의 주요 업무가 '개발'에서 '평가'로 바뀔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연구·개발 부서의 존재 의의 자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걸 채택하고 어떤 식으로 조정할지는 결국 회사가 결정해야 할 몫이니까요."
그는 마지막으로 '이노베이션 3.0'을 위해선 기업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부에 문호를 개방할 정도가 되려면 직원들의 마인드도 개방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구글(Google)이 사무실 안에 휴양지 같은 시설을 설치하고, 업무 시간 일부를 직원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한 것에서 시사점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문화는 조직 내의 혁신을 촉발시킬 뿐 아니라 경직돼 있던 직원들의 자세와 태도를 유연하게 만들어줍니다. 열린 마음으로 혁신적 아이디어를 찾는 것, 이제 기업의 경쟁력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