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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선 코닥의 구원투수… 페레즈 회장 '혁명같은 경영'

자하연 2010. 10. 12. 14:44

출처 : http://blog.naver.com/spp0805/120116491685

 

 

[Weekly BIZ] [Cover Story] 벼랑에 선 코닥의 구원투수… 페레즈 회장 '혁명같은 경영'

 

"필름 시대 끝난 사실 코닥만 몰랐다"

한순간에 무너진 100년 아성…
대중 카메라 처음 만든 아날로그 필름의 대명사
디카 최초로 만들고도 시장 요구 외면하다 추락
'한물간 기업' 소리 들어…


화려한 과거가 미래 보장못해…
핵심 필름사업부터 개혁… 기업용 프린터서 돌파구
"실적개선 아닌 새회사 창조"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실적 반전이나 회생(turn around)이 아닙니다. 근본적 변혁이자 탈바꿈(transformation)입니다. 그저 한때 잘나가던 회사가 실수를 한 뒤 회복하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란 말씀이죠. 아예 새로운 회사를 창조하는 중입니다(We are creating a new company)."

122년 역사의 글로벌 기업 코닥의 CEO인 안토니오 페레즈(Antonio Perez) 회장은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근본적 탈바꿈"이라는 말을 5~6차례나 반복했다.

지난 10여년간 코닥은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세계 정상의 자리에서 급격한 추락을 경험했다. '한물간 기업'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페레즈 회장의 목소리에는 이제 그 아픔을 떨쳐내고 완전히 새로운 기업으로 태어나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코닥은 아날로그 카메라의 추억을 가진 세대라면 누구나 머릿속에 떠올리는 대표적 필름·카메라 제조 회사다.

122년 전 대중용 필름 카메라를 처음 개발한 창업자 조지 이스트먼(Eastman)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코닥 문자가 새겨진 카메라용 필름은 1990년대까지 전 세계 거의 어느 나라에서나 만날 수 있는 1등 상품이었다. 90년대 초반 코닥의 연 매출은 190억 달러(약 21조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거대 공룡 병(病)'이 코닥의 발목을 잡았다.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개발했다. 그러나 기존 주력제품이던 필름 시장을 잠식할까 봐 디지털 카메라의 개발과 마케팅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필름 매출감소에도 "중국 등 신흥시장에서 필름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시장의 요구에 귀를 닫았다. 기존 틀에 안주하려 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다른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디지털 카메라 제품을 내놓았고, 2000년대 들어 시장의 대세는 디지털 카메라로 완전히 넘어갔다. 코닥의 매출은 2003년 들어 130억 달러로 급락했다.

그런 코닥이 2003년 영입한 구원투수가 페레즈 회장이다. 그는 이전까지 컴퓨터·프린터 제조회사인 HP에서 25년간 근무했다.

 

"회사를 바꿔가는 과정은 그 어떤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힘든 일은 필름 사업이 황혼기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직원들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필름 카메라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데 코닥만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누구든 자신이 여태껏 해왔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런 깨달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페레즈 회장은 부임하자마자 대내외적으로 필름 산업이 쇠퇴기로 들어섰음을 처음이자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직원들에게도 "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더 이상 과거의 성공이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깨닫기 전에는 절대로 환골탈태할 수 없다"는 것이 페레즈 회장의 생각이었다. 이 같은 명확한 위기 인식은 방향성 없이 오락가락 방황하던 코닥에 새로운 활로를 터주었다.

페레즈 회장은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기업용 디지털 프린터 사업에 새로 뛰어들었다. 이와 함께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 사업도 새 성장축으로 키웠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필름 사업 비중은 전체의 3분의 1 이하로 확 줄였다.

마케팅의 핵심 타깃도 소비자에서 기업으로 바꿨다. 이미 수요가 한계에 달한 소비자 시장(B2C) 비중은 줄이고, 기업 시장(B2B)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일반 소비자의 매출 비중은 70%대에서 30%로 줄어든 반면, 기업 매출은 70%로 늘어났다.

하지만 공룡의 변신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닥은 새 사업들이 안착하지 못해 2008년 이후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코닥의 변신은 아직도 진행형인 것이다.

조지 이스트먼은 페레즈 회장이 존경하는 인물이지만 역설적으로 기존의 조직 문화를 상징하는 이중적 존재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사무실로 출근할 때마다 이스트먼의 유령에 시달린다"고 고백했다.

"사실 회사 곳곳에 아주 값비싼 조지 이스트먼의 초상화들이 걸려 있습니다. 지나갈 때마다 쳐다보게 되죠. 그럴 때마다 항상 그도 저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지 이스트먼은 여러 가지 면에서 너무나도 훌륭한 리더였지만, 코닥은 (그 초상화 아래에서) 꽤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죠."

페레즈 회장은 코닥의 혁신을 위해서는 회사의 뿌리인 이스트먼조차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제가 전임자들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코닥은 많은 장점을 보유한 회사이고, 저는 약점보다 장점에 더 집중하고 싶다는 점입니다."

인터뷰는 코닥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사가 있는 중국 상하이 푸둥 지구의 한 빌딩에서 이뤄졌다. 최근 아시아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페레즈 회장은 이틀 전 베이징에 들러 시장을 점검한 뒤 다시 상하이로 날아온 상태였지만,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코닥, 이름만 빼고 다 바꿨다"

페레즈 회장은 HP에서 이름을 날리던 스타 경영자다. HP의 잉크젯프린터부문장 시절 5년간 9000만대의 프린터를 판매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프린터를 저렴하게 파는 대신 잉크를 비싸게 팔아 돈을 버는 방식도 그가 동료들과 함께 안착시킨 비즈니스 모델이다.

엄청난 캐시카우(cash cow)를 만들어낸 그는 나중에 HP 부사장까지 됐다. 본래 스페인 출신이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했다. 32년 전 HP 스페인지사에서 일하다 능력을 인정받아 미국 HP 본사 발령을 받은 것이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영업의 귀재로 통하는 페레즈 회장에게도 '공룡' 코닥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기업용 디지털 프린터와 카메라·캠코더 등 새로운 사업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성공 여부는 아직도 확실치 않다. "살기 위해선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만이 확실한 명제다. 그냥 필름 기업으로 남았다면 코닥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중국 상하이 푸둥 지구의 한 빌딩 인터뷰 룸에 들어선 그는 밝은 얼굴로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특이하게도 필름 인화지로 만든 것이었다. 변화하는 와중에도 코닥의 핵심 정체성은 아직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그는 남유럽 출신답게 대단히 열정적이었다. 때론 다혈질이라는 인상을 줄 정도로 자기감정 표현에 솔직했다. 주요 대목에선 손짓과 몸짓까지 섞어가며 코닥의 미래와 변신에 대해 설명하려 애썼다.

■매출 70%를 디지털 제품으로

 

 ―회장님이 부임하기 전 코닥은 시장 대응에 늦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코닥 이사회는 2003년에야 '필름산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내리막길에 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말씀대로 좀 늦은 감이 있는 판단이었습니다. 당시 필름 카메라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 코닥만 모르고 있다는 얘기도 들렸죠."

변화 저항하는 직원들로 '반항자 위원회' 만들어
대안 내놓도록 요구하자 오히려 조직 변화에 앞장


90년대 초까지 아날로그 필름·카메라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코닥은 90년대 말 디지털 카메라의 도전이 시작되면서 급속한 침체에 빠졌다. 전 세계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20%씩 성장한 반면, 필름 시장은 매년 15%씩 감소했다.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제일 먼저 개발한 코닥이 오히려 변화에 눈을 감은 것이 문제였다. 91년 190억달러에 달했던 코닥의 연 매출은 2003년 130억달러, 작년 76억달러까지 떨어졌다.

페레즈 회장은 "필름 산업은 당시 어떤 기술보다도 훨씬 빨리 소멸되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변화를 꾀했나요?

"코닥은 새로운 경영팀을 구성하고 전략을 재정비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상했습니다. 2003년까지 회사 매출 대부분과 수익의 절반이 필름 판매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확 달라졌습니다. 매출의 70%, 이익의 60%가 프린터·카메라 등 디지털 제품에서 나옵니다. 대부분 그전에 없던 새로운 제품입니다. 끊임없이 개혁조치들을 단행했고,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혁신에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레즈 회장이 추진한 가장 큰 변화는 아날로그 기업에서 디지털 기업으로의 변신이다. 필름에 매달렸던 과거와는 달리 프린터·카메라·캠코더 등 디지털 제품을 대거 내놓으며 주력 사업을 바꾼 것이다.

아날로그 카메라와 필름 기업이 어떻게 디지털 프린터나 캠코더 사업을 할 수 있었을까? 예상 못한 답변이 나왔다. "카메라·필름 제조에 쓰이는 이미지 및 인화 기술이 프린팅 기술에도 쉽게 접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강점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코닥은 사진·인쇄에 필요한 화학적 합성물, 나노입자, 잉크 등 재료과학(material science)과 이미지 처리 기술에서 앞서 있는 기업입니다. 많은 사람이 코닥을 필름회사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사실 카메라 필름에 상(像)을 맺어 인화지에 프린팅해 주는 기술을 가진 이미지 전문기업입니다.

필름 사업은 비전이 없었지만, 이를 통해 확보한 이미지 기술들은 프린터 등 새로운 분야에 활용할 여지가 많았죠. 이것이 우리의 경쟁력이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도 본래 코닥이 발명한 것이잖아요."

페레즈 회장은 특히 "기업용 디지털 프린터를 코닥의 새로운 돌파구로 삼았다"고 했다. "인쇄전문업체의 프린터는 오랜 기간 기술적 변화가 별로 없었습니다. 또 HP가 장악하고 있는 소비자 대상 프린터에 비해 경쟁도 덜했습니다. 우리는 이 분야에 독자적 기술력이 있었고, 네스프레스 등 관련 중소기업도 인수해 규모를 키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난 7년간 기업용 시장에서 큰 성장을 이룬 이유입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인쇄 산업은 초기에는 '기기(appliance)' 즉 프린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도 기술력은 충분했죠.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니 인쇄에서 실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기기가 아니었습니다. 고객은 프린터를 사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좋은 프린팅(인쇄) 결과물을 얻고 싶어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우리는 여기에 필요한 고품질의 소프트웨어들을 함께 개발해냈습니다. 이용자들이 원하는 인쇄물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또 보다 선명하게 인쇄하도록 프린터를 작동할 수 있는 고성능 도구들을 함께 제공한 것입니다."

페레즈 회장은 "개인적으로 자주 받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코닥이 왜 예전처럼 광고를 많이 하지 않느냐'는 것"이라며 웃었다. "과거에는 소비자 시장 중심(B2C) 회사였기 때문에 대중 상대 광고에 많은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B2C가 3분의 1로 줄어든 만큼 광고도 그 정도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코닥은 더 이상 예전의 코닥이 아닙니다."

이 같은 변신 노력의 결과, 코닥의 사업구조는 크게 달라졌다. 코닥의 주력 사업은 이미 기업용 디지털 프린터 시장으로 옮겨갔다. 매출 비중에서도 기업용 프린터(GCG)와 디지털 카메라·캠코더(CDG), 필름(FPEG) 등 3개 사업부가 3분의 1씩을 차지하고 있다.

"기업용 프린터 사업은 제가 만들어낸 신규 사업입니다. 출판사와 잡지사, 달력제조회사 등 수시로 대규모 인쇄물을 찍어내야 하는 회사들을 주고객으로 삼는 사업입니다. 소비자 한 명 한 명에게 소규모 프린터를 팔았던 이전과는 규모가 다른 시장입니다." 필름 분야에서도 일반 소비자보다는 영화 제작을 하는 영화사와 방송사 등을 주타깃으로 삼고 있다.

■저항하는 30%를 내 편으로 만들고, 과거의 상징물을 버려라

변화하기 힘든 '공룡 기업'을 어떻게 개혁했는지를 물었다. 그가 답한 것은 '3분의 1 법칙'과 '과거와의 절연'이었다.

어떤 조직에도 3분의 1은 변화를 완강히 거부하는데, 페레즈 회장은 이들로 'R 위원회'를 구성해 대안을 내놓도록 했다. 'R 위원회'는 반항자를 뜻하는 'Rebel'에서 따온 말이다. 실제 이들이 내놓은 제안은 회사정책에 반영됐다. 그러자 내부 반발은 줄고 변화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됐다.

개혁을 위해선 과거와도 절연해야 했다. 그는 과거의 업무방식을 뜯어고치고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과 함께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 2003년 당시 5만명이 넘던 직원은 분사와 감원 등을 통해 2만명대로 줄었다. 수많은 필름 공장이 문을 닫았고, X레이 부문은 분사됐다. 2009년 코닥의 초대형 베스트셀러 필름인 '코닥 크롬' 생산 중단 결정은 아날로그 시대 코닥의 상징물을 스스로 버린 파격적 조치였다.

코닥은 한때 동물뼈에서 나오는 필름 원재료인 젤라틴을 얻기 위해 직접 소 농장까지 운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 제조 일부를 아웃소싱하는 등 한결 유연해졌다.

페레즈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것은 신나는 일이지만, 많은 자산과 인력을 가진 사양사업을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코닥이 현재 준비하고 있는 혁신상품이나 대박 상품은 무엇입니까?

"초고속, 저비용의 상업용 디지털 프린터입니다. 필름기술을 프린터 분야에 적용해 지난 4년간 집중 연구했습니다. 올해 첫 제품이 나올 예정인데, 분 당 4000장을 인쇄하면서 1장 당 1센트 미만의 비용으로 고품질의 데이터 인쇄가 가능합니다. 이 기술은 인쇄 산업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코닥의 변신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코닥은 너무나 유명한 필름 회사였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디지털 기기 판매에 방해가 될 수도 있을 텐데요.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브랜드 이미지를 과거와 연관시킨다는 것이 어려운 점입니다. 앞으로도 몇 년간은 코닥이 필름회사였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겠죠.

하지만 이제는 디지털 시장에서 높은 품질의 편리한 제품을 제공하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주려고 노력 중입니다. 어찌 보면 예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기술로 고객들에게 만족스러운 제품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화제를 바꿔 코닥의 최근 실적 부진의 원인에 대해 물어봤다. 코닥은 2006년 이후 4년 내리 매출이 줄었고, 2007년을 제외하곤 3년간 적자를 봤다. 올해도 75억달러 연 매출 목표 달성이 불투명한 상태다. 디지털 카메라 사업은 2005년 한때 미국 시장 1위를 차지했지만, 이듬해 적자누적으로 사업중단을 검토하는 등 출렁거림을 반복하고 있다.

"회사의 중요한 가치가 필름에 있었지만 이제 필름은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진정한 가치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몇 년 내에 실현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실적 반전이나 회생(turn around)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완전한 탈바꿈입니다."

개혁 프로젝트 80% 달성
122년 동안 축적해온 회사 특허도 과감히 매각
세계 최고 그래픽 기업될 것


―수익성을 개선할 방법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내가 말해온 것이 바로 그 답입니다. 부임 당시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직 모두 완성된 것은 아니고 현재 80% 정도 달성된 것으로 봅니다. 높은 성장성을 가진 2~3가지 상품 라인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2012년쯤에는 의미 있는 결실을 볼 것입니다."

코닥은 최근 이어지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122년 동안 축적해온 회사 특허 가운데 일부를 매각했고,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사업권을 LG에 넘기기도 했다. 종합해 보면 외형적 변신에는 성공했지만, 내실로 보면 아직 갈 길이 먼 상태다. 기업이 한번 시대 흐름을 놓친 뒤에 새롭게 자리매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일까. 페레즈 회장은 인터뷰 도중 "왜 이렇게 실내가 덥느냐. 에어컨이 가동 안되는 것이냐"며 답답해했다. 또한 일부 질문에는 "무엇에 대해 묻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하지만 코닥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려는 페레즈 회장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그는 코닥의 궁극적 목표와 비전에 대해 "세계 최고의 그래픽 기업"이라고 답했다. "그것도 몇 년 내로"라는 단서까지 달아서. "우리의 그래픽 기술은 사람들 일상의 모든 분야에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2~3년 정도면 우리가 해온 그간의 노력들이 빛을 볼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바쁘게 돌아서는 페레즈 회장의 모습에서 '새로운 바람'이 느껴졌다. 과거의 환상에서 벗어나 시장의 변화를 한발 앞서 읽고 주도적으로 대응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그의 말과 함께 말이다.

코닥(Eastman Kodak)은?

 

1888년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설립된 세계 최초의 대중용 카메라 제조회사. 당시 34세의 조지 이스트먼이 설립했다. 이스트먼은 본래 은행원이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다. 8년 가까이 연구에 몰입한 끝에 1888년 코닥을 통해 일반인용 아날로그 카메라를 내놓는 데 성공했다.

코닥의 카메라만큼이나 유명해진 초기 광고 문구는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해드립니다(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였다. 이처럼 코닥의 카메라는 사용법이 간단했고 값도 이전 제품의 수십 분의 1 수준이었다. 이전에도 카메라는 있었지만 부피나 무게가 들고 다니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사용법도 무척 까다로웠다.

코닥은 아날로그 카메라와 필름을 양대 축으로 1900년대 들어 더욱 가파르게 성장했다. 20세기 중반에는 사람들이 '사진' 하면 코닥부터 떠올릴 만큼 상징적인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초에는 한해 매출이 190억달러(약 21조원)를 넘는 등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코닥은 한순간에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1990년대 말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에 안이하게 대응한 것이 화근이었다. 급격한 매출 감소에 시달리던 코닥은 2003년 말 HP 출신의 페레즈 회장을 영입해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상하이=탁상훈 기자 if@chosun.com

입력 : 2010.10.09 03:02 / 수정 : 2010.10.09 0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