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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을 넘는 힘 "하이컨셉"

자하연 2011. 3. 31. 21:09

1991년 일본 아오모리현()에 시련이 닥쳤다.

수확을 앞두고 불어온 태풍 탓에 90%의 사과가 낙과했고 농민들은 슬픔과 절망에 빠졌다. 이때 한 농민이 침묵을 깨고 아이디어를 냈다.

"괜찮아, 우리에겐 아직 떨어지지 않은 10%가 있잖아!

우리가 만약 "떨어지지 않은 사과"를 "떨어지지 않는 사과"로 만들어 수험생을 대상으로 합격사과를 만들어 팔면 승산이 있어!"

그렇게 해서 탄생한 "합격사과"는 보통 사과보다 10배나 비싼 가격임에도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 당시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이처럼 관점을 바꾸어 기능적인 가치 뒤에 숨어 있는 감성가치 또는 문화예술적 가치들을 창조해 내는 것을 세계적인 석학 다니엘 핑크(Daniel Pink)는 "하이 컨셉트(High Concept)"라고 이름 붙였다.

 

악성(樂聖) 베토벤이 "목소리도 훌륭한 악기"라는 낯선 생각을 통해 교향곡에 독일의 시인 쉴러(Schiller)의 시 "환희에 붙임"을 노래로 융합해 "합창교향곡"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품(?)을 탄생시켜 음악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것이나, 이석형 함평군수가 군수로 취임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시골도시 함평을 "나비"라는 모티브를 융합해 "세계 나비 및 곤충 엑스포"의 중심도시로 만들어 낸 것, 삼성전자가 첨단기술에만 매몰되지 않고 와인의 세상과 와인문화를 이해해 "보르도TV"를 만들어 텔레비전의 최강자로 도약한 것, 그리고 중소기업 아이손이 운동선수들이 모래주머니를 발에 달고 훈련하는 것을 보고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무거운 운동화(파워다이어트 슈즈)"만들어 세계 일류 상품을 탄생시킨 것 등은 모두 하이컨셉트를 상상해 내었기에 이룩할 수 있었던 업적들이다.

 

하이컨셉트는 크고 힘센 사람들뿐 아니라 작고 힘없는 사람들도 그들의 운명을 순식간에 바꾸어 버릴 수 있는 대단히 유용한 전략무기다. 또 어떠한 불황이 우리를 찾아온다고 해도 생존과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상상력으로 한땀 한땀 기워낸 갑옷이다.

 

 

그렇다면 개인, 가정, 기업, 대학, 공공기관, 지자체 등 각 분야에서 하이컨셉트를 만들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이컨셉트는 대부분 "무엇인가와의 결합"에서 탄생한다.

우리가 하이컨셉트에 매료되는 이유는 그 엉뚱하고 낯선 결합 속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움" "재미" 또는 "놀라움"이라는 감성가치(感性價値)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합창교향곡"은 기악과 성악, 그리고 문학(쉴러의 시)의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고, "함평"은 도시와 나비의 결합, "보르도TV"TV와 와인의 결합, "아이손 운동화"는 운동화와 다이어트(모래주머니)의 결합인 것이다.

 

즉 대부분의 하이컨셉트는 그 이전까지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던 어떤 무엇과의 뜻하지 않은 결합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엇인가 결합해 낼 재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찾고, 또 공부해 나가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인문학과 다양한 문화, 그리고 예술 속에 해답이 있다.

창조적인 경영자라면 이제 문화예술가로 변신하거나 문화예술가들과 영감의 교류를 통해 깊이 있는 식견과 지식을 갖추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야 한다.

 

모든 산업이 성숙해지고 평준화되어 버린 지금은 하이컨셉트의 시대다.

하이테크도 중요하지만 하이테크에 하이컨셉트가 더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벽을 깨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불평하거나 단념하지 말자.

 

스티브 잡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한 편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아이팟을 만들었고, 두바이의 통치자 셰이크 무하마드는 그 자신이 시인(詩人)이 되어 두바이라는 놀라움의 도시를 창조해 내었다.

 

21세의 새로운 콜롬버스가 되려면 나만의 하이컨셉트를 찾아내야 한다.

지금은 창조의 시대. 창조적인 제품을 만들기에 앞서 창조해야 할 것은 바로 하이컨셉트다.

하이컨셉트 앞에 불황이란 없기 때문이다.

 

 

<출처 : 중앙선데이 2008.8.31, : 강신장, 삼성경제연구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