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

[스크랩] 옛 추억의 제주

자하연 2010. 10. 20. 13:32

 

 

 

 

 

 

1960년대 말께의 서귀포 전경

1960년대의 서귀포를 각각 다른 각도에서 조감하여 찍은 사진이다.

서귀포 최초의 관광호텔이 들어서고 이 호텔의 하얀 굴뚝이 시선을 끈다. 포구에 들어와 있는 배도 대형화 추세를 엿볼 수 있다.

1960년대의 관덕로

관덕로 거리를 다리 걷어붙인 한 사나이가 걸어오고 있다. 세워져 있는 지프 한 대, 우생당책방과 남도치과,

국제미싱사와 나포리미싱사, 이런 간판들이 보이고 제주여행사의 간판도 눈에 뛴다. 길은 아직 2차선이다.

1970년대의 제주시가 전경

지금 KAL호텔이 있는 쪽에서 내려다본 1970년대의 제주 시가지 모습이다. 왼쪽에 규모가 비슷한 주택단지가

들어서 있고 시내 요소요소에 개발의 기운이 들어차있다. 길도 과거에 비해서는 훨씬 넓게 빼어져 있다.

병문천 하류에서의 멸치잡이

여름날 병문천 하류에서 젊은이들이 그물로 밀려온 멸치떼를 잡고 있다.

재 깊숙이 까지 멸치떼가 밀려 오는 일은 과거에는 흔했었다. 그 하류에는 멱감는 아이들이 떼지어 있다.

탐라의 미인들

제1회 탐라미인 선발대회에서 영예롭게 선발된 탐라미인과 준탐라미인이다.

이 때 탐라미인으로 선발된 사람은 高麗珍씨인데 그녀는 나중 아나운서로 중앙에서 활약한다.

철쭉제 날의 백록담

화창한 철쭉제 날 백록담에 운집한 인파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백록담을 훼손시켰으니

오늘날 입산통제를 해야 할 정도로 황폐해진 것은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철쭉보다는 사람꽃이 피어 있는 것 같다.

전국 대학생 적설기 등반

제주대학이 주최가 되어 제1회 전국 남녀대학생 적설기 한라산 등반대회가 열리고 있다.

출발에 앞서 관덕정 앞에서 식이 거행되고 있는 장면이다.

산지천의 복개

냇가에 모여 살던 무허가 주택들이 철거되고 산지천이 복개되기 시작할 무렵이다. 시멘트 기둥들이

막 세워지고 있는데, 이제 이걸 헐어내고 재개발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세월이 여류한다는 말은 실감이 있다.

1960년대의 서문로

상가가 줄지어 서있는 서문로에 차와 사람들이 엉키어 있다.

이 때 이미 도로 사정은 엉망이었던 모양이다. 약방과 건재사, 당구장들도 들어서 있다.

 

애월읍 중심지의 전기 점화식

애월리 중심가에서의 전기 점화가 되던 날이다. 오색 깃발이 날리고 아치에 전구도 매달려 있다.

"하나 둘 셋 하면 스위치를 누르십시오" , 신호를 기다리는 표정이 진지하다.

동문로의 포장 준공

동문로에 경사가 겹쳤다. 가고가 확장 포장되고 하수도시설도 이루어졌다. 이걸 축하하는 식이 열리는 모양이다.

오가는 자전거, 이 무렵의 주 서민 교통수단인 것 같다.<白鷺會>의 천막이 한결 시원스럽다.

고구마 썰어 말리기

산방산 부근의 밭에서 고구마를 기계로 썰어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하얗게 마르는 고구마, 이것들은 주로 주정의 원료로 쓰여졌다.

비양도에 해저수도

비양도에 수도 가설을 위한 해저수도를 매설하고 있다. 섬주민들의 작은 배들이 공사에 동원되었다.

비양도 기슭의 납작한 자붕틀, 미양도는 마치 기계충 오른 아이 머리 모습이다.

수고 통수식

쇠파이프를 통하여 수돗물이 나온다. 한 평생 물허벅을 지노라 등이 굽은 할머니가 컵에 물을 받아 마신다.

물맛과 감회가 어떨까. 좋은 세상 왔다고, 둘러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나 없이 밝다.

제주에서 서귀간 횡단도로 개통

5·16쿠데타 이후에 제주의 가장 큰 변화를 불러온 것은 한라산 동녘 기슭을 관통하여

첫 번째 횡단도로가 빼어진 것이라 할 것이다. 이로써 제주가 명실공히 1일생활권이 되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제주시가지 전경

三姓穴 서쪽편 언덕에서 내려다본 제주 시가지의 전경이다. 바다가 병풍처럼 둘려 있고 그 안에 제주시가지가 담겨 있다.

오른손편 지금의 KAL호텔 자리에 있는 건물은 제주여고 교사이다. 이 부근에 아직 시가지 조성이 안돼 있던 때이다.

도두동 포구의 물맞이

과거 제주시 도두동 포구가의 물맞이터이다. 그 당시에도 1등의 수질. 시멘트로 물줄기가 세게하고

본격적으로 물맞는 터를 만들어 놓았다. 이제 제주에서도 이런 장소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조천포구와 연북정

돛을 내리고 포구에 정박한 배가 마냥 한가롭다. 그너머로 멀리 연북정의 기와지붕이 보인다.

초가에 섞인 함석지붕, 동네 사람 몇이 둘러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일출봉과 성산포

일출봉의서녘 기슭에 성산포 마을이 조성되기 시작 할 무렵이다.

공장으로 보이는 집 몇 채, 거기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로 보아 탁주공장이나 패류가공공장이 아니었을까.

수매밑 포구에 떠 있는 배 두어 척, 이때 만해도 성산포는 매우 한적한 어촌이었다.

병문내 하류의 빨래터

병문내 하류의 빨래터에서 아낙네들이 세답이 한창이다.

하얀 옷이 아낙네들이 바닥의 검은 바위들로 하여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빨래감은 구덕에 담아 내왔다.

 

상여 행렬

만장과 명정을 앞세우고 상여가 지나갈 참이다. 남녀 조문객들, 이웃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서서 나가는

상여를 지켜보고 있다. 전봇대와 초가 등으로 미뤄 일제시대쯤으로 보인다.

제주측우소와 산지물

비탈 꼭대기에 측후소의 첨탑, 맞은편에 소나무 한 그루가 대조적이다.

비탈 중간쯤에 빨래를 넌 초가와 인입전주가 보이고 아래쪽에 산지냇가의 샘터가 보인다.

양손에 물통을 든 바지게꾼과 물 긷는 여인의 뒷모습, 그리고 앉아있는 댕기머리 처녀, 당시의 한 풍속도이다.

서당 훈장과 학동들

일제시대가 되면서 그들은 한때 개량서당을 운영한적이 있었다.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훈장에 학동들은 이미

거의가 단발을 했으며 입성도 양복을 입은 아이가 있다. 신발은 짚신과 고무신, 나막신까지 한데 섞여 있다.

 

 

물 위에 떠있는 해녀들

등대기를 드러낸 채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족새눈을 쓴 해녀들이 바다로 나가고 있다.

 빗창을 든 해녀도 있어 다소 조작된 사진임을 알 수 있다. 넘실거리는 물이랑이 효과적이다.

결혼 행차

예복을 갖추어 입고 백마를 탄 신랑이 앞장서고 새각시의 가마가 뒤따랐다.

그 뒤로 말 탄 상객들이 뒤따르는 이 결혼 행차는 막 동네로 들어서고 있는데 정황을 미뤄 보아

신랑이 색시 집에 가서 색시를 데리고 신랑 집으로 돌아오는 참인 것 같다. 이런 결혼 풍습은 제주만의 독특한 것이었다.

관덕로의 변해가는 모습

일제식민지 당시 변해가는 관덕로 부근의 모습이다. 고층집이 생기고, 간판과 전봇대들이 늘고, 함석으로 된

연통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행인들은 남자와 어린이들로부터 검은색 옷을 입기 시작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제주도 영림서겸 제주 산림보호구

일제식민지시대가 되면서 그들은 한라산의 서나무를 베어내어 표고 재배를 시작했다. 영림서에서 키워낸 삼나무와 소나무의

묘목으로 식목도 했다. 그들은 한라산의 나무들을 자원으로 보았기에 퍽 중요시했는데 이 건물은 그 관리와 행정을 담당했던 곳이다.

마치 잘 사는 부자의 살림집같은 이 집은 그러나<관음사>란 제목이 붙어 있다. 낮은 지붕, 바깥의 유리문, 벽은 백회로 단장을 하였다.

뒷뜰의 나무들이 아직 애나무들인 점을 보아 당시 이 부근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서귀포 시가지와 문섬

일제 식민지시대인 1928년 당시의 서귀포 시가지 전경이다. 집들이 건성드믓 있고 새섬 너머에 문섬이 스름하게 누워 있다.

집들은 크고 함석지붕들이어서 신흥 시가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른손 편에 그 유명했던<벼락맞은 소낭>이 보인다.

제주측우소 언덕에서 조감한 제주읍 전경

지금의 제주측후소 쪽 언덕에서 내려다 본 일제시 제주읍의 전경이다. 자세히 보면 큰길 가의 집들부터 기와나 함석으로

지붕이 바뀌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길가에 드문드문 전봇대, 멀리 끝부분에 해안과 수평선이 보인다.

사라봉 쪽에서 찍은 제주읍의 전경

정리되지 않은 산지내 건너 제주읍의 시가지가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그 때는 관덕정이 단연 두드러졌던

건물로 뚜렷한 지붕이 중심부에 보인다. 안온한 해촌의 정경인데 관덕정에서 동회하던 신작로가 그래도 뚜렷하게 뻗어 있다.

제주항 건설 이전의 산지포 주변

제주항 건설 이저의 산지포구 주변의 모습이다. 돌로 축장을 한 포구 안에 작은 배가 들어와 있고, 사람들이 작업을 한다.

멀리 탑동의 해안이 뻗어 있고 주변은 정리가 안되어 산만하다. 아득히 제주읍내의 모습도 보인다.

제주읍 오일장의 그릇시장

시장에도 개화의 물결이 많이 들어와 있는 때임을 알 수 있다. 두루마기나 오바 위에 도리우찌 모자가 갓 쓴 사람들과 어울려 있다.

그릇시장에 나온 물건도 사기그릇들에 구리주전자들도 보인다. 칠성로 입구쪽에서 서쪽을 향해 찍은 사진이다.

관덕정 마당의 제주읍 오일장

관덕정 쪽에서 동쪽을 향하여 찍은 것이다. 정면에 잠방이 위에 도리우찌를 쓴 사내가 사진 찍는 것을 의식한 듯 웃고 있다.

모인 사람들의 숫자로 보아 장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광장의 양쪽에 전봇대가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전기 가설이 된 후임을 알 수 있다.

1929년의 제주도청

이제부터 사진의 일부는 1929년 조선총독부 발행의<생활상태조사>보고서에 실린 것들이다. 이 무렵에 찍은<제주도청>.

정문 입구 정면과 청사 모습이 보인다. 정문과 벽에, 그리고 인도의 양쪽에 백회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양쪽에 거창하게 광고판이 서 있다.

금령리 해안의 어구 보관

바닷가에 나무로 사귀에 기둥을 세워 소위 상자리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 그물 등 어구의 가리를 쌓아 놓았다.

상자리 위에 어구를 쌓은 것은 습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초가마당에서의 세콜방애

세콜방애 고들베 지엉 저녁이나 밝은 때 허라"는 구절의 민요가락이 있는데 이여인들이 지금 세콜방애를 찧고 있다.

민요에 맞춰 세 사람이 번갈아 방아를 찧어 나가는 것이다. 손발이 잘 맞아야 잘 찧게 된 방아이다.

애기구덕

지금 40∼50대 이상의 사람들은 누구나 어려서 이런<애기구덕>이라는 이 고장 특유의 요람에 누워자랐던 추억이 있다.

대로 짠 이 구덕은 통의 중심쯤에 그물을 엮고 그 위에 짚을 깐 다음 기저귀를 깔고 아기를 눕혔다.

그리고 이 요람을 흔들며 자장가를 불렀다. 이요람은 심지어 밭이나 어디나 지고 다니기도 했다.

제주 농가의 부녀자들

당초 붙어 있던 제목은<가래리 농가의 부인>이다. 가래리는 과거 서귀포시 江汀洞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 모습 역시 제주도 전역에서 과거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이다.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여인이 아랫도리를 벗은 두아이를 함께 업은 모습이 이채롭다. 또 아기 업은 소녀는 맨발이다

바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정방폭포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것으로 유명한 정방폭포, 그하얀 물줄기가 외롭게 보인다. 절벽 위의 나무들이 아직 그리 크지 않았던 때이다

 

대정고을 농부의 풍속

단산으로 보이는 산 기슭밭 가운데를 중년의 두 농부가 짐을 지고 지나가고 있다.

흰 바지 저고리에 털벙거지를 쓴 앞장선 사람은 지게 위에 멱서리, 그 위에 쇠스랑을 얹고 있고

갈잠방이 적삼에 대패랭이 차림의 뒤엣 사람 역시 지게 위에 돗거름으로 보이는 짐을 지고 있다. 보리라도 갈러 가는 것일까.

제주 해녀 10명

오조리 여인 10명을 표본추출하여 사진을 찍은 일제는 다시 제주 해녀 10인을 추출하여 이렇게 사진을 찍었다.

앞으로 손을 모아 쥐거나 엉거주춤한 자세, 이 여자들에게는 일률적으로 수건을 씌워 놓았다.

추자도의 테우와 배들

추자도의 해안 바닥에 테우와 어선들이 세워져 있다. 일제의 관헌들로 보이는 제복의 사내들이 서 있는 모습들로 보아

이 사진 역시 조사 과정에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 포구는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천연조건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테우와 돛배

어로수단인 테우와 돛배가 만조의 연안에 한가로이 떠 쉬고 있다. 연안 자갈돌들로 보아 추자의 신양리쯤으로 추정된다.

식민지시대가 되면서 일본의 잠수기선들이 우리연안에 자주 출몰했던 것으로 미뤄 이런 열악한 수단을 역이용했을 수도 있다.

추자도 기슭의 동네

추자섬 기슭의 동네 납작납작 엎드린 초가들이 이야기라도 나눌 듯이 정답다.

갯바닥에 작은 배 몇 척이 보이고 아직 포구는 정지되지 못했던 것 같다. 전형적 옛날 어촌 모습이다.

 제주시 사라봉에서 바리본 제주시 전경

 1950년대 서귀포시 모슬포항 모습 저 멀리 한라산

1950년대 제주시 한림항 주변 모습 

 제주시 오현단 주변 모습

 조랑말과 마차가 다니는 옛 거리의 풍경

제주시 중심가를 관통하는 산지천의 모습

이곳에서는 맑은 물이 땅속에서 흘러 나와 빨래와 목욕을 했던 곳입니다. 

 여인의 물허벅 지고가는 모습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성상 물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물이 땅 속에서 물이 흘러 나오는

곳에서 물허벅으로 물을 집까지 운반해 사용했습니다. 그 역할은 여성이 맡았습니다.

 물질하러 나가는 해녀들의 옛 복장

 초가 지붕이 보이는 서귀포시 시가지 모습

 서귀포시 성산일출봉 주변의 모습

돗통시

똥돼지로 알려진 제주의 옛 화장실입니다. 돗통시는 돼지가 있는 화장실이라는 제주사투리입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가로로 놓여진 두개의 발판에 앉아 볼 일을 보면 돼지가 밑 쪽으로 이동해 사람의 '흔적'을 해결하는 구조입니다

 애기구덕

제주 여성들이 밭일, 물질(해녀작업), 나들이를 나갈 때 애기를 넣어 등에 지고 다니는바구니를 '애기구덕'이라고 하죠.
애기가 바구니 밖으로 삐져 나올 정도로 좀 크네요. 급할 때는바구니를 좌우로 흔들어 잠을 재울 때도 사용합니다.

 물허벅을 진 여학생들

여학생들이 물을 긷는 작은 물허벅인 '대바지'를 등에 지고 물을 나르고 있네요.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성상 먹는 물이 아주 귀했습니다.
먹는 물은 주로 지하수가 땅을 뚫고 나오는 용천수가 있는 곳까지 가서 긷어다 사용했습니다. 물을 긷어 나르는 일은 주로 여성의 몫이었습니다

 고사리 꺾는 아이

구덕을 지고 고사리를 꺾던 두 아이가 잠시 쉬고 있네요. 고사리 꺾기는 현재도 봄철

제주의 풍속도 가운데 하나로 연례 행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사진은 1950년대 모습입니다.

 산지천 빨래터

제주시 구 시가지를 관통하는 산지천에서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있고, 아이들은 옷을 벗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네요.
울타리 형식의 돌담은 바닥에서 솟아나오는 샘물을 넘쳐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쌓았다. 1968년 복개돼 상가 건물이

들어서기 전까지 산지천은 제주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생활공간으로 인기를 누렸다. 2002년 7월 복개된 건물을 걷어내고,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당시 청계천 복원에 앞서 산지천 복원 현장을 찾기도 했다.

 도두 오래물 물맞이

제주시 지역에서 가장 수량이 풍부한 도두동 '오래물'에서 남자들이 물맞는 모습을 여인들이 담장 너머로 바라보고 있다.
물맞이 풍습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즐겨왔고,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탕건 겯기

아가씨들이 초가집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탕건을 겯고 있습니다.
섬돌에 벗어놓은 검정 고무신이 눈에 들어오네요


집줄 내기

마당에서 여럿이 일손을 모아 초가 지붕을 가로, 세로로 단단히 묶을 집줄을 내고 있습니다.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보통 2년마다 지붕을 새로 덮어야 합니다. '집줄대기'도 그때 함께 이뤄진다고 하네요.

 조선일보 특보

]주민들이 1963년 북제주군 지역 국회의원 선거 득표 결과를 알리는 조선일보 특보 벽보판을 쳐다보고 있네요

 한라산 사냥꾼과 개

1935년 1월 한라산 적설기 첫 등반에 나섰던 경성제국대학 산악부 팀 선발대장인 이즈미 세이치(泉靖一)가

한라산에서 만났던 사냥꾼과 개라고 하네요.사냥꾼은 가죽 옷과 설피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경마대회

1962년 5.16주년 기념 경마 대회에서 조랑말을 탄 기수들이 힘차게 달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대나무 낚싯대를 든 강태공들

1966년 제1회 시민낚시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개회식에 모여 대회 규칙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입니다


낚시하는 미군들

미군들이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를 들고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미군들의 서툰 낚시질을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네요

 국토건설단 제주 도착

1962년 5.16 직후 깡패 소탕령으로 구속된 사람들로 조직된 국토 건설단이 제주항에 들어온 모습입니다.
이들은 한라산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5.16도로 건설에 투입됐습니다

 산악인 고상돈 환영식

1977년 고상돈씨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제주공항에서 열린환영식 모습입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

제주는 매년 크고 작은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이죠. 태풍이 지나간 뒤 간판이 어지럽게 떨어진 시가지 모습입니다

출처 : 청아 巖陵 을 探 하러 !
글쓴이 : 청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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